국가유산 정보
소개
이 자리에는 1627년(인조 5)에 지어진 정자가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정묘생(丁卯生) 동갑계원(계수(契首) 최명익(崔命翼)외 20인)에서 강릉객사(江陵客舍) 일부를 뜯어 옮겨지었다고 한다.
홑처마 팔작지붕의 정자(丁字)집으로 배흘림 굵직한 기둥의 사용과 특이한 평면 구성이다. 총 4칸의 면적에 단층집으로 벽을 치지 않고 마루만 놓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일단의 장대석 기단위에 10개의 흘림기둥으로 이루어졌는데 난간은 정면 중앙의 1칸 후면 3칸에는 없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단층 궁창부가 있는 계자난간(鷄子欄干)으로 처리하였다. 양식은 창방(昌枋)위에 소루(小累)를 놓아 장혀(長舌)를 받쳤고, 그 위에 도리를 얹어 가구가 형성된 무익공(無翼工)집이다. 특이한 것은 주두(柱頭)의 형태가 다른 건조물에서와 달리 크고 하단의 사절(斜切) 부분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안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렸고, 밖으로는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오성정 현액과 석촌거사(石邨居士)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자재가 사용되어 각 부분자재 크기의 비례에서 오는 우리 건축 특유의 아름다운 맛이 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