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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현(崔應賢)
- 호수재(睡齋)
- 출생년도1428년
- 사망년도1507년
조선조의 문신으로서 자는 보신(寶臣), 호는 수재(睡齋), 이조참판(吏曹參判) 치운(致雲)의 아들이다.
세종 30년(144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단종 2년(1454)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하였다.
그는 효심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하여 노모(老母)의 봉양을 위해 강릉 훈도(訓導)를 자처하였으며 그후 저작(著作), 박사(博士), 전적(典籍) 등에 임명되었다.
이후 사성(司成)을 거쳐 성종 14년(1483)에 집의(執義)가 되었고, 이듬해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에 재직하였는데 안동지방의 수령(守令) 및 학교와 만호동(萬戶洞)의 불법을 적발하였다.
1487년에 이조와 호조의 참의를 역임했다.
다음해에는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에 제수되었으며, 성종 22년(1491)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경주부윤(慶州府尹)에 임명되었다.
연산군 1년(1495)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연산군 5년(1499)에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가 되었고, 연산군 8년(1502)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에 이어 공(工), 형(刑),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인조 23년(1645)에 강릉 향현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