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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김윤신(金潤身)
  • 괴당(愧堂)
  • 출생년도1444년
  • 사망년도1472년

주원의 후손으로 사정(司正) 여명(汝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평의(評議)를 지낸 강릉 왕씨 집안의 딸이었다. 字는 덕수이고 호는 괴당(槐堂)이다.

그의 성품은 소박하고 덕이 있었으며 학문에 심취하여 세조 14년(1468)에 생원에 합격하여 음사(蔭仕)로 훈도(訓導)를 지냈다.

성종 7년(1476) 문과에 합격하여 사록(司錄)과 전적주부(典籍主簿)에 임명되었다가 경상도사(慶尙都事)와 전중감찰(殿中監察)을 지냈는데 노친(老親)이 있어 사퇴 상소를 냈다.

이에 왕은 그의 효심에 감복하여 금성현령(金城縣令)에 특별히 제수하였다.

이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과 집의(執義)를 거쳐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그리고 파주, 원주목사를 역임했다.

한편 그는 성품이 정직하고 또한 청백하여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으며 더우기 강원도 어사로 재직할 때 부사 한급(韓汲)의 학정(虐政)과 부정을 장계(狀啓)하여 파직케 하였다.

만년에는 관직을 사퇴하고 귀향하여 춘헌(春軒) 최수(崔洙)와 괴헌(槐軒) 최자점(崔自霑) 등과 뜻을 같이하였다.

그리고 15명의 지역 문인들과 더불어 최응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를 설립하였으며, 부사(府使)가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그를 빈상 및 향좌수(鄕坐首)로 모셨으며 이에 그는 향령(鄕令) 1편을 지어 향촌에서 준행토록 하였는데 그뒤 율곡 이이와 도경 최운우가 여씨향약에 의거 윤색하였다.

순조 8년(1808)에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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