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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달

박공달(朴公達)
  • 사지(四止) 또는 사유당(四休堂)
  • 출생년도1470년
  • 사망년도미정

시행(始行)의 아들로 일찍이 진사에 뽑혔으나 덕행을 닦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

충암(沖庵) 김정(金淨)이 금강산을 유람할 때 공달(公達)과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서 만나 보고 그 사람됨에 탄복하였다.

김정이 돌아가 그를 조정에 적극 천거하자 기묘년에 효렴과에 뽑혔다.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과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냈다.

사림들에게 화(禍)가 미치자 공 또한 벼슬에서 물러나 시골에 물러앉아 삼가 선생과 함께 같은 마을에서 아침 저녁으로 서로 왕래하며 경학강의를 하며 세상을 잊고 지냈다.

공은 성품이 강직하고 자세가 단정하여 엄동이나 염천(炎天)에도 의관(衣冠)을 가지런히하고 위엄을 잃지 않았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삼가 박수량의 성품은 호탕한 데다 거리낌이 없어 격식을 갖추거나 꾸미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록 잡다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굴어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성격이 서로 다름이 이와 같았다.

충효의 큰 절조에는 해와 별같이 빛나고 반짝거렸다.

이런 면에서는 박공달과 같았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선사(善士)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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