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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

김열(金說)
  • 임경당(臨鏡堂)
  • 출생년도1506년
  • 사망년도미정

조선시대의 학자로서 본관은 강릉, 자는 열지(說之), 호는 임경당(臨鏡堂), 강릉김씨 임경당파의 파조(派祖)이고, 명주군왕의 24세손이다.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세거하며 경사(經史)와 문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과거에 응시했다는 기록은 없고,[강릉김씨천이백년사(江陵金氏千二百年史)]에 의하면 평강(平康)의 훈도(訓導)로 제수되었으나 처음부터 불사(不仕)하여 일생동안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효친과 우애로 제가(濟家)하였다 한다.

형제가 한 마을에 살았으므로 아침저녁으로 형제의 우애를 나누었고, 집 주위에 선대에서 심어놓은 소나무가 있어 후손이 함부로 손을 댈까 두려워, 율곡(栗谷)에게 부탁하여 후손들이 귀감으로 삼게 글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여 율곡이 호송설(護松說)을 지어 주었다.

지금도 금산리 종가에서는 그의 호에서 연유한 임경당이라 쓴 누정이 있고, 이 임경당은 그 연대가 오래되고, 또한 조선 후기 개인 건축물로써 그 가치가 인정되어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 율곡의 호송설 제판(題板)이 지금도 걸려있다.[강릉김씨천이백년사]에 의하면 그는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나 주위에서 과거를 하여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했으나, 효친과 우애로 평생을 일관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임경처사(臨鏡處士)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순조 8년(1808)에 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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