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성

최수성(崔壽城)
  • 원정(猿亭), 북해거사(北海居士), 경포산인(鏡浦山人)
  • 출생년도1487년
  • 사망년도1521년

조선조의 학자로서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 북해거사(北海居士), 경포산인(鏡浦山人)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고, 본관은 강릉으로 생원 세효(世孝)의 아들이다.

그는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서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 등과 교류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또한 시문, 서화, 음률, 수학에 능통하였는데, 충암(沖庵) 김정이 원정의 산수화에 지은 화제(畵題)를 보면, "청요암봉립(淸曉岩峯立)하니 백운(白雲)이 횡취미(橫翠微)하고 강교(江橋)에 인불견(人不見)하니 강수원의의(江樹遠依依)라"하였다.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동지들이 처형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어느날 원정이 노천(老泉) 김식(金湜)의 집에 가서 누워있는데 남곤(南袞)이 찾아왔다.

남곤은 노천에게 누워 있는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묻자 노천은 "세상에 숨어사는 원정이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에 원정은 남곤이 돌아간 후 노천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남곤과 같은 간사한 사람과 교유하는가"라고 하였는데, 이말을 들은 남곤이 원한을 품었으며, 마침내는 중종 16년(1521) 신사옥사(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다.

후에 신원(伸寃)되어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인조 23년(1645) 강릉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그의 행장은 약헌(約軒) 원홍리(元弘履)가 지었으며, 진위(振威), 원홍리 등이 원정을 추향하는 서원건립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후에 보은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972년에는 강릉 화동서원(華東書院)에도 배향되었다.

1957년 5월에 세워진 신도비는 현재 강릉시 대전동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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