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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5.11, 조회수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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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릉 학생 독립운동 : 중외일보 19300911
작성자 함문숙
내용 중외일보 193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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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측.... 태도 매우 강경
40여 명에 퇴학 처분 금후 전개를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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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업학교에서는 개학일을 앞두고 다시 동요를 전개하더니, 지난 5일에 와서 2학년생 전부는 학교 당국과 동 학무과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돌연 맹휴를 단행하였다고 이미 보도하였다. 한번 경험하였던 학교 당국은 더욱 태도가 강경하여 벌써 다음과 같은 희생자를 내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는 학생측에서는 더욱 진영을 공고히 하여 강경한 대항전을 계속하기로 한다는 데 일반 사회에서는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번 맹휴의 동요도 1학기에 일어난 맹휴의 계속 행동으로 진정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진정서 내용
1. 하라구치(原口) 교장 배척(내용중략)
1. 다유이(田結) 교무주임 배척(내용중략)

◇ 희생된 학생
▲ 퇴학 최헌집(崔憲集 강릉), 최민승(崔敏昇 강릉), 김주용(金周容 양양), 허한동(許漢東 강릉), 최춘영(崔春永 강릉), 한광희(韓光熙 강릉)
▲ 무기정학 정흥순(鄭興淳) 외 36명

이와같이 학교 당국에서는 맹휴 벽두에 무자비한 처벌을 단행하여 자못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학생측에서는 단순하게 선생 배척 만으로 정면충돌을 하며 공고한 결속을 하고 있다 한다.

(해석) 1929년에 결성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일본인 교장 하라구치와 주임교사 다유이가 학생들에게 험한 말과 핍박을 일삼자 1930년 7월 11일 당일 시험일에도 불구하고 맹휴를 주동하였다.
신문에는 일본인 교장과 주임교사 배척만이 보도되었다. 당 시대에 학생들이 작성하였던 격문들을 보면 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알 수 있다. 조선종독부의 신문검열이 심하여 그 외의 내용은 보도될 수 없었다.
강릉농업학교 학생들은 당시의 엘리트로서 민족적 자부심이 강하였고, 이후 1945년까지 민족주의, 농민과 노동운동, 야학, 비밀결사 등 항일운동을 해왔으며 강원도뿐만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도 독립운동을 해왔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강릉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명단을 다수 찾을 수 있으며, 함흥형무소로 이감된 명단을 신문 보도자료를 통하여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는 전자 인영화되어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조금은 노력을 해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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